답다니언덕집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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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현듯 내 기억의 시작을 더듬다 보면 한 여름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게 일어나는 이미지들이 술래 잡듯 다가오다 흐려진다. 

 잡힐 듯 말 듯 허구일지도 모르는 수많은 기억들이 놀리듯 다시 숨어버리고 나면 나는 여전히 이 작은 집 한편에 서 있다.

익숙한 무늬의 낡은 벽지 위로 이제는 오래되어 장식품이 되어버린 괘종시계가 이따금씩 나를 불러낸다.

맞은편 벽에는 여전히 내 키보다 커다란 거울이 아직도 건재한 듯 내 모습을 뽐내주려다 사라진다.

한 여름 어스름께 마지막 남은 한 사람마저 떠나버린 놀이터에는 슬며시 차가운 가로등 빛이 얼굴을 붉히기 시작한다. 

 요란하던 아이들 소리가 아직도 공터 구석 곳곳에 남겨진 듯 귀 기울이다 보면 내 목소리도 가만히 들려온다.

수년이 흘렀다. 잿빛의 콘크리트 바닥에 검은 아스팔트가 깔리더니 어두운 중산간의 밤길은 더욱 깊어졌고,

원래 '올레'였던 이 길은 새삼스레 '올레'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.

가로등 빛이 잠이 드는 이른 새벽 멀리서 들려오는 경운기 소리에 일어나 어릴 적 등굣길을 걸어보다 문득 낯설어진 감정에 발걸음이 멈춘다.

여전히 그때의 나와 닮은 아이들과 나보다 어른인 반가운 집들 사이에서 마치 나만 혼자 변해버린 것처럼...

바뀌어버린 대문, 비가 쏟아지는 귤 창고와 노천욕조, 사라진 방들과 넓어진 거실, 뜯겨진 벽지와 새로이 놓인 가구들이 

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 기억속의 이미지로 떠올린 곳이 아니라 해도 이곳은 그저 소중한 내 기억의 안식처일 뿐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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